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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슬픈 외국어

by 심평온 2015. 5. 2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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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미국에 반일감정이 만연할 때 일본인 학생에게 미국에서 살기 힘들지 않냐고 질문 받은 하루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물어도 나로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정말 곤란해진다. 일본에 있든 미국에 있든 생활의 기본적인 질이란 건 그다지 크게 다를 건 없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변변찮은 녀석은 있다. 화나는 일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도 물론 있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오해를 사거나 불안해지는 일도 있다. 잘난 척하며 뻐기는 놈도 있고, 완고하고 융통성 없는 녀석들도 있다. 다른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 데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면 그건 뭐 그 나름대로 불쾌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은 비슷한 비율과 빈도로 일본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본어로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 화가 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일본에도ㅡ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듯이ㅡ변변치 않은 녀석은 꽤 있다. 백 명의 미국인과 일본인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자세히 조사해보면, 변변치 않은 녀석, 잘난 체하는 녀석, 남의 험담만 늘어놓는 녀석 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쪽의 그래프에서도 거의 똑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절한 사람이나 재미있는 사람의 비율도 역시 엇비슷할 것이다.

물론 일본인이라는 것 때문에 미국에서 살기 힘든 점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확실히 그런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 있을 때에도 여러 종류의 차별이 있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찻집 겸 바 같은 것을 도쿄에서 경영했는데 그때 이런저런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 아파트를 구하러 부동산 중개소에 가도, "아아, 물장사를 한다고요. 안 되겠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은 사절이에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집을 구하러 갔다가, "우리 집은 일부 상장기업에 다니시는 분밖에는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일본이 외국인(비일본인)을 차별하는 역사적 치열함에 비하면 아마도 하찮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것 역시 차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차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실제로 차별당하는 쪽에 서보지 않으면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면 "역시 일본이 좋다"라든가 "미국이 좋다"라는 양자택일적인 견해가 점점 희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지내기 힘들지 않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하지만 도쿄에서 살면서 지내기도 꽤 힘들었어요"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내 경험으로 비춰보면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요령은 이런 것이다.

(1)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먼저 자신이 확실하게 파악할 것. 그리고 그 포인트를 되도록 빠른 기회에 우선 짧은 말로 명확하게 할 것.

(2) 자기가 제대로 알고 있는 쉬운 단어로 말할 것. 어려운 단어, 멋진 말, 의미 있는 말은 불필요하다.

(3) 중요한 부분은 되도록 반복해서(바꿔 말하라) 말할 것. 천천히 말할 것. 가능하면 간단한 비유를 넣어라.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점에 유의한다면 그다지 말이 유창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비교적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그 자체가 '문장 쓰는 법'도 되는구나.

 

(하루키의 소설가가 된 경위)

나는 학창 시절에 확실히 뭔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화 각본을 쓰고 싶었다. 각본이 아니면 소설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영화에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와세다 대학 영화연극과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도중에 이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쓸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도대체 뭘 써야 좋을지도 몰랐고,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지도 몰랐다. 이것을 쓰고 싶다는 소재도, 테마도 없었다. 그런 인간이 영화 각본 같은 것(혹은 각본뿐 아니라 어느 것이든)을 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건 자명한 이치다. 하지만 영화 각본을 읽는 건 좋아해서 강의는 듣지 않아도 매일같이 대학 연극 박물관을 다니면서 동서고금의 영화 각본을 섭렵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한 게 큰 공부가 되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써지지 않을 때는 무리해서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 뭔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를 위한 하나의 어드바이스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나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고, 일을 시작했다(아니, 거꾸로다. 결혼하고, 일하기 시작하고, 그러고 나서 졸업했다). 그리고 가혹한 현실 생활에 쫓겨 내가 뭔가를 쓰려고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빌린 돈도 갚아야 했고, 아무튼 아침부터 밤중까지 마차를 끄는 말처럼ㅡ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비문학적인 상투문구다ㅡ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그것을 칠 년간 계속했다. (중략)

그러고 나서 나는 스물아홉 살 때 갑자기 소설을 써야게싿고 생각했다. 나는 설명한다. 어느 봄날 오후, 진구 야구장으로 야쿠르트 대 히로시마 팀의 경기를 보러 갔던 것. 외야석에 누워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힐튼이 2루타를 쳤을 때 갑자기 "그래, 소설을 쓰자" 하고 생각했던 것. 그래서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을.

내가 그렇게 말하면 학생들은 모두 멍한 표정을 짓는다. "저...... 그 야구 시합이 뭔가 특별한 요소가 있었던 건가요?"

"그게 아니라 그건 계기에 불과했지. 햇빛이나, 맥주 맛이나, 2루타 공이 날아가는 모양이나, 여러 요소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서 내 안에 있는 뭔가를 자극했겠지. 말하자면......" 하고 나는 말한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확립하기 위한 시간과 경험이었던 거야. 그것은 특별하고 유별난 경험일 필요는 없어. 그저 아주 평범한 경험이어도 상관없지. 하지만 그건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드는 경험이어야만 해. 나는 학생 때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어. 뭘 쓰면 좋을지를 발견하기 위해 나에게는 칠 년이라는 세월과 힘든 일이 필요했던 거겠지, 아마도."

"만일 그 사월 오후에 야구장에 가지 않았다면 무라카미 씨는 지금 소설가가 되었을까요?"

"Who knows?"

 

 

노동은 내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교사였고, '진짜 대학'이었다.

예를 들어 가게를 보고 있으면, 매일 많은 손님이 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내가 하는 가게를 마음에 들어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령 열 명 중에 한두 사람을 빼고 가게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한두 사람이 당신이 하는 일을 정말 마음에 들어한다면,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가게에 와야지" 하고 생각해준다면, 가게라는 건 그런대로 유지되어가게 마련이다. 열 명 중에 여덟아홉 명이 "뭐 나쁘진 않군" 하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도 열 명 중에 한두 사람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하는 편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것을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피부로 절실히 느꼈다. 정말 뼈를 깎듯이 그것을 느꼈다. 따라서 지금도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형편없다는 말을 들어도, 열 명 중 한두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면 그걸로 좋다고 고집스럽게, 일종의 생활 감각으로 믿을 수 있다. 그런 경험은 내게는 다시없는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소설가로 살아가는 게 훨씬 더 힘들었을 테고, 어쩌면 이런저런 면에서 내 본래의 페이스가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동료 작가인 무라카미 류에게 한번 했더니, "하루키 씨, 대단하네. 나 같으면 열 명 중에 열 명이 좋다고 하지 않으면 화가 날 텐데" 하고 말하며 감탄했다. 이런 점은 확실히 무라카미 류답다고 할까...... 오히려 내가 감탄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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